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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와 허무 속의 청춘 –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분석

by 문화과학자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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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읽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데뷔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限りなく透明に近い ブルー)』는 1976년 발표와 동시에 일본 문단에 폭풍을 몰고 온 문제작입니다. 당시 만 23세의 작가가 써낸 이 소설은 제7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쾌거와 함께, 일본 문학의 관습적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파격적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 작품을 단지 '성적 일탈과 마약의 이야기'로 오독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자기 정체성의 붕괴, 허무와 공허 속에 잠식된 세대의 초상화로 읽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은 진면목을 드러냅니다.

 

1. 줄거리 요약

 

주인공 ‘류’는 일본의 한 주택가 근처에 있는 미군 기지 근처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일상은 마약, 섹스, 파괴적인 관계로 가득한 폐쇄적인 공동체 속에 존재합니다. 친구인 루리코, 요시유카, 카즈오, 미야구치 등은 모두 무기력하고 중독된 청춘들입니다. 그들은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삶 속에서 끊임없는 자극과 감각의 소비를 통해 무언가를 회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류는 그들 가운데서도 미세하게 거리감을 유지하는 관찰자입니다. 그는 무너져가는 타인과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갑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 문장이 이 소설 전체를 대변합니다.

 

 

2. 제목의 의미 – ‘투명에 가까운 블루’란 무엇인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표현은 상징적입니다. 블루(Blue)는 슬픔과 냉소, 정서적 고립을 상징하며, ‘투명’은 그 안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즉, 색이 있지만 의미 없는 감정, 형체가 있으나 실체 없는 삶을 표현하는 문학적 은유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들은 모두 어떤 고통이나 트라우마로부터 도피하고 있지만, 그 도피처는 감각적 쾌락이라는 더 깊은 허무로 이어집니다. 결국 이 소설의 ‘블루’는 상처 입은 세대의 정서이자, 냉소적 세계를 마주한 청춘의 자화상입니다.

 

번개가 핸들을 잡은 리리의 손을 비춘다.
파아란 선이 투명한 피부에 파묻혔고 흙이 잔뜩 묻은 팔에 물방울이 구른다.
구부러진 금속 튜브 같은 도로, 차는 기지의 철조망을 따라 달린다.
"아, 깜박 잊었네."
"뭘?"
"머릿속 도시에 비행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잊어버렸어."
리리의 머리카락이 진흙을 매달고 몇 가닥 덩어리고 뭉쳤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파란 혈관이 목을 달리고 어깨에는 온통 소름이 돋았다.

 

파란 섬광이 한순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리리의 몸에도 내 팔에도 기지도 산들도 하늘도 다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나는 투명해진 그것들 저편을 달리는 한 줄기 곡선을 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곡선, 하얀 기복 – 부드러운 커브를 그리는 하얀 기복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는 일어서서 내 방으로 걸어가며 이 유리처럼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하얀 기복을 비쳐내고 싶었다. 나에게 비친 하얀 기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늘 끝이 밝고 희뿌옇게 변하면서 유리 파편은 금방 흐려져 버렸다. 새소리가 들려오자 이제 유리 파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3. 작품의 특징

1) 문체와 기법 – 냉정하고 감각적인 실험

무라카미 류는 이 작품에서 기존 문학 문법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단편적인 묘사, 파편화된 이미지, 구체적 서사 없이 감각 중심의 장면 전환, 폭력, 섹스, 마약을 ‘자극’이 아닌 ‘무감각의 은유’로 처리 등 이런 기법은 일본 문학의 기존 질서에서 매우 이질적이었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쾌감을 느끼기보다는 감정이 사라진 세계를 목격하는 불쾌감을 경험합니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입니다. 무기력한 청춘을 미화하지 않고, 차갑게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그런 문체의 실험과 연결됩니다.

2) 시대적 배경 – 1970년대 일본의 청춘

이 작품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대의 초상입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 이후의 허무감, 미국 문화와의 충돌(기지촌, 미군, 흑인문화 등), 경제성장에 따른 소비주의와 정체성 상실, 가족과 사회의 해체 등 훗날 우리사회가 겪었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1970년대 일본 청년들이 이념과 공동체를 상실한 후 남은 것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청춘들은 무너진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감각으로 확인하려는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그 감각조차 결국 마비됩니다. 그 공허함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정서입니다.

3) 등장인물 해석

인물 상징/해석
감정의 죽음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관찰자, 작가 자신의 분신
루리코 감정 없는 섹스를 반복하는 여성, 육체화된 허무
카즈오 미국 병사들과 성관계를 맺으며 존재감을 확인, 자기혐오와 자학의 상징
요시유카 폭력을 통해 존재감을 추구, 파괴의 충동을 내면화한 인물
미야구치 지적인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무기력, 이성과 허무의 모순
 

이 인물들은 모두 ‘미래가 없는 젊은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입니다. 각각의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존재를 파괴하면서 확인하려는 실존적 고뇌를 보여줍니다.

 

4. 문학사적 의의 및 영향력

 

1976년 아쿠타가와상 수상하며 파격적 데뷔를 했던 이 작품은 당시 일본 청년 세대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그러나 보수 언론과 평단에서는 '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후 일본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재평가됩니다.

 

 

5.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의 비교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교될 때, 류의 문학은 훨씬 직설적이고 육체적이며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띱니다. 특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이후 『코인로커 베이비즈』, 『토파즈』 등으로 이어지는 몸과 사회, 욕망의 연결 구조를 처음 제시한 텍스트로서 중요합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1970년대의 책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살아있는 문학입니다.

 

한편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1976)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1987)은 모두 청춘의 상실과 허무, 죽음과 성, 현실에 대한 거리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과 미학, 문체, 세계관은 매우 다릅니다. 두 작품의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감각과 감성의 차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감각의 세계입니다. 주인공 류는 자신과 타인의 고통, 쾌락, 공허를 마치 임상적 관찰자처럼 묘사합니다. 이는 현실의 감정을 잃어버린 세대의 절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죠.

반면 『노르웨이의 숲』은 감성의 세계입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을 지키려 애쓰며, 죽음과 상실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안의 슬픔을 감싸 안으려는 인물입니다. 하루키는 이를 음악, 풍경, 사색적인 언어로 표현하죠.

2) 죽음과 자살의 다층성

두 작품 모두 자살을 주요 소재로 다룹니다. 그러나 그 무게와 묘사 방식은 극명히 다릅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는 자살이 충격이 아닌, 일상의 한 장면처럼 툭 던져집니다. 죽음조차 더 이상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자살이 인간의 고통과 긴밀히 연결된 개인적 비극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애도하고, 그 여운을 짊어지는 방식입니다. 이 차이는 두 작가의 세계관 차이, 즉 '죽음 이후에 인간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입장 차이로 읽을 수 있습니다.

3) 사랑과 섹스의 거리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섹스는 대부분 감정 없는 소비적 행위입니다. 사랑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감정 마비의 증거처럼 묘사됩니다. 인간은 오직 육체를 통해서만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듯하죠. 반면 『노르웨이의 숲』은 사랑과 섹스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입니다. 육체적 접촉은 상호 이해와 애정의 표현이며, 인물 간의 정서적 깊이를 강화하는 매개입니다. 이 차이는 두 작품의 인간 이해가 완전히 다름을 보여줍니다.

4) 청춘의 초상 — ‘고립’ vs ‘회복’

류의 청춘들은 사회, 가족,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있으며, 누구도 구원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조차 자신을 포기한 듯 보입니다. 반면 하루키의 청춘들은 고립 속에서도 치유와 회복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와타나베는 마음을 닫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며, 끝내 삶을 선택합니다. 이 점에서 하루키는 보다 인도주의적 작가, 류는 실존주의적 작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vs 『노르웨이의 숲』― 류와 하루키의 서로 다른 청춘

비교 항목 무라카미 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출간 시기 1976년 (작가 23세, 데뷔작) 1987년 (작가의 5번째 장편)
배경 시대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후반기 1960년대 말, 학생운동의 여운기
주요 장소 미군 기지 근처의 기지촌 도쿄의 대학가와 기숙사, 숲 속 요양원
주인공 류 – 감정이 마비된 관찰자 와타나베 – 감정적 혼란을 겪는 내성적 청년
중심 테마 감정의 마비, 섹스와 마약, 존재의 허무 사랑과 상실, 우울, 자살, 치유의 갈망
문체 특징 단편적, 건조하고 냉정한 묘사 서정적, 감성적이고 유려한 문체
성 묘사 직설적이며 감각을 잃은 섹스 감정과 연결된 애정 표현
핵심 감정 무감각, 허무, 파괴 우울, 슬픔, 치유
세계관 구조 없는 세상, 무의미한 존재 인간 중심의 정서적 연대 가능
청춘의 위치 고립된 소비 주체 흔들리지만 살아가려는 존재
문학적 성격 반이념, 반도덕적 현대실존소설 심리서사 중싱의 휴먼드라마
죽음의 의미 반복되고 무의미한 현실의 일부 존재의 본질과 삶의 상처
삶의 태도 무기력과 냉소, 체념 슬픔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려는 의지
독자 반응 충격과 논쟁의 중심, 아쿠타가와상 수상 폭발적 인기, 1000만 부 이상 판매
사회적 영향 포스트전쟁 청춘의 실존적 고립 조명 대중성과 문학성의 접점에서 청춘의 정서 대변

 

두 작가는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청춘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무라카미 류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듯 외면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갑니다. 한 작품은 차갑고 파괴적이며, 다른 하나는 조용하고 사색적이지만, 둘 다 일본 청춘의 진실한 고통과 감정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20세기 후반 일본문학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비록 말랑한 감성과 훈훈한 성장담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감정이 죽은 세계 속에서도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절규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감정을 잃고 있습니다. SNS로 대체된 관계, 기계적인 삶, 무뎌진 감각 등...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읽는 감각’이 아니라 ‘살아낸 감정’입니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방황하는 우리에게 조금은 다른 위안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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