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우아함과 우울, 여성적 감수성의 독자적인 미학
20세기 초 파리의 예술 세계는 입체주의, 야수주의, 추상미술 등 기존의 회화적 질서를 뒤흔드는 실험으로 가득했다. 예술가들은 대상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 색채를 어떻게 해방할 것인지, 회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를 치열하게 탐구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은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녀는 형태를 과감하게 해체하거나 세계를 공격적으로 재구성하기보다 현실의 인물들을 부드러운 색채와 유연한 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배치했다. 분홍색과 회청색, 옅은 녹색과 라일락색이 어우러지는 화면에는 소녀와 여성, 동물, 꽃과 나무가 등장한다. 인물들은 현실의 특정한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기억과 꿈 사이에 머무는 존재처럼 보인..
2026. 10. 19.
홍위병, 그 이후: 혁명은 끝났지만 책임은 어디에 남았는가
1966년 중국의 거리에는 붉은 완장을 찬 청년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마오쩌둥을 찬양했고, 혁명의 이름으로 교사와 지식인을 비판했으며, 낡은 사상과 문화를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의 사회질서를 뒤흔들었다. 일부는 다른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폭행했으며,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에 가담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다. 문화대혁명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과 사인방의 체포를 거치며 종결되었다. 홍위병으로 활동했던 청년들도 나이를 먹었다. 학교를 떠났던 이들은 직업을 얻었고, 가정을 꾸렸으며, 자녀를 키웠다. 일부는 학자와 작가, 예술가, 기업가가 되었고,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했을까? 자신들이 한때 열광적으로 참여했던 혁명, 그 과정에서..
2026. 10. 11.
피나 바우쉬(Pina Bausch), 탄츠테아터의 탄생과 현대무용의 혁명
현대무용을 이야기할 때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는 거의 하나의 장르처럼 언급된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피나 바우쉬는 현대무용가인가, 안무가인가, 연극 연출가인가? 아마 가장 정확한 대답은 그 모든 경계에 걸쳐 있는 예술가이다. 그녀는 춤을 만들었지만 춤만 만들지 않았다. 무용수들은 그녀의 작품에서 걷고, 뛰고, 소리치고, 웃고, 울고, 말을 하고, 서로를 껴안고, 밀어내고, 넘어지고, 반복되는 행동을 수행한다. 무대에는 흙과 물이 등장하고, 거대한 바위가 놓이기도 하며, 꽃과 의자와 테이블 같은 일상의 사물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단순히 ‘춤과 연극을 섞은 공연’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피나 바우쉬가 진정으로 변화시킨 ..
2026.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