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의 영혼이 녹아든 ‘재즈 시대’의 거울이라고나 할까요. 재즈라는 장르의 분위기처럼 위대한 개츠비는 꿈과 환상, 순수와 타락이 뒤섞인 삶의 어느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허무한 어느 순간을 포착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소설이 사랑을 받는 이유이겠지요. 인생무상이라는 격언 속에서도 한 번은 마지막 불꽃처럼 빛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우리의 가장 진실된 모습인지 모릅니다.
1. 작가 소개: 젊은 천재, 허무의 시대를 써내려가다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는 미국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재즈 시대의 연인'으로 불렸으며, 휘황찬란했던 192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피츠제럴드는 미네소타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보다는 문학과 연애에 몰두했고, 제1차 세계대전 군복무를 계기로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This Side of Paradise)』(1920)은 출간 즉시 대성공을 거두며 그를 문단의 스타로 만들었고, 당시 약혼 중이었던 젤다 세이어(Zelda Sayre)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부의 화려한 삶은 점점 피폐해졌고, 젤다는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피츠제럴드는 알코올 중독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1925년에 출간되었지만 초기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작품이 ‘잊힌 실패작’으로 여겨졌다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문학의 정전으로 재조명되었고, 오늘날에는 '미국 소설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2. 줄거리 요약: 아메리칸드림을 품은 남자의 몰락
소설은 ‘닉 캐러웨이(Nick Carraway)’라는 중산층 출신 청년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채권 중개업을 위해 1922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웨스트 에그(West Egg)로 이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닉의 이웃은 신비로운 억만장자 ‘제이 개츠비(Jay Gatsby)’입니다. 그는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지만 정작 주인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수많은 루머를 퍼뜨리지만, 개츠비는 닉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목적을 밝힙니다. 그는 사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성 ‘데이지 뷰캐넌(Daisy Buchanan)’과의 재회를 꿈꾸며 그녀가 사는 이스트 에그 근처에 집을 짓고 부를 축적한 것입니다.
하지만 데이지는 이미 상류층 출신의 ‘톰 뷰캐넌’과 결혼한 상태입니다. 개츠비는 닉의 도움으로 마침내 데이지와 재회하지만, 그녀는 결국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개츠비를 버립니다. 이어지는 자동차 사고와 비극적인 오해 속에서 개츠비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닉은 이 허무한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가는 배”라는 말로 소설을 맺습니다.
3. 상징성과 주제 분석: 꿈과 허상의 경계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겉보기에는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국 사회의 계급 문제, 자본주의의 허상, 인간 욕망의 공허함이 깔려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시적인 문체와 정교한 상징을 통해 미국식 꿈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드러냅니다.
1) 그린 라이트(Green Light)
개츠비가 밤마다 바라보는 데이지의 저택 앞 선착장의 초록빛 불빛은 ‘꿈’과 ‘희망’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이 초록빛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 너머에 있습니다. 이는 아메리칸드림이 본질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임을 암시합니다.
2) T. J. 엑클버그 박사의 눈
‘회색의 계곡(Valley of Ashes)’ 위에 버려진 광고판에 그려진 거대한 눈은 신의 부재 혹은 사회의 도덕적 붕괴를 상징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이 눈은 그 모든 것을 무심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3) 회색의 계곡
도시와 도시 사이에 위치한 이 황폐한 공간은 산업화와 자본주의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노동 계급의 소외를 상징합니다. 이는 피츠제럴드가 자본 중심 사회에 품었던 비판적 시선을 엿보게 합니다.
4) 파티와 부
개츠비의 파티는 겉으로는 풍요와 화려함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은 허무함과 외로움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파티는 그 자체로 소비주의 사회의 공허한 유희를 상징하며, 개츠비는 그 꿈을 통해 데이지라는 과거의 환영을 붙잡으려 합니다.
4. 시대적 배경: 재즈 시대의 빛과 그림자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Roaring Twenties)’으로 불릴 만큼 급격한 경제 성장과 문화적 해방을 경험한 시기입니다. 여성의 참정권 확보, 금주법 시대의 음지 문화, 재즈의 부흥, 대도시 문화의 팽창 등이 맞물리며 미국 사회는 화려하게 탈바꿈합니다. 피츠제럴드는 이 시기의 상징이자 증인으로, 부유함과 퇴폐, 젊음과 허무를 절묘하게 포착해 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이 시대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욕망을 투영한 작품입니다. 개츠비는 이 시대의 이상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지만, 동시에 이 시대가 가진 환상과 붕괴의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5. 현대적 의미와 영향: 오늘의 우리는 개츠비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
1) 아메리칸드림의 비판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칸드림을 신화로 만들지 않고, 그것의 실체를 조명합니다.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이상은 부의 불균형, 계급 장벽, 사회적 위선 앞에서 허물어집니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주제입니다.
2) 계급 이동의 환상
개츠비는 하층민에서 출발하여 막대한 부를 이루지만, 상류층으로 완전히 편입되지는 못합니다. 피츠제럴드는 혈통, 교육, 문화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급 장벽을 예리하게 묘사합니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3) 인간관계의 허무와 소외
데이지와 톰, 조던, 심지어 닉까지도 결국 책임을 회피하거나 진실을 외면합니다. 개츠비의 죽음 앞에서도 모두가 등을 돌리는 상황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관계, 소비되고 버려지는 관계성에 대한 묵직한 메타포로 읽힐 수 있습니다.
4) 문학과 대중문화 속 위상
『위대한 개츠비』는 현대 문학 교육의 필수 고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차례 영화화되며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2013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개츠비 역을 맡았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는 1920년대 스타일과 현대 팝 감성을 결합해 새로운 세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6. 우리는 왜 여전히 개츠비를 읽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단지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 연애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분 상승의 신화,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 인간 욕망의 비극성을 응축한 한 시대의 축소판입니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가 이룬 부나 파티 때문이 아니라, 끝내 닿지 못할 꿈을 끝까지 추구했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비극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우리 안의 이상주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데이지로 형상화된 저마다의 꿈, 그 꿈에 닿기 위해 사람들은 몇 번이고 끊임없이 노를 젓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우리는 다시 과거로, 회색의 계곡으로 밀려갑니다. 그러면서 다시 묻습니다. 과연 그 꿈은 진정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