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입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주체 개념은 데카르트적인 자기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 해체와 구성의 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통해 주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사상가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후기 푸코는 자신의 사유의 방향을 전환하며 자기 자신을 주체로 구성하는 윤리적 실천, 곧 ‘주체의 해석학(hermeneutics of the subject)'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푸코가 말하는 ‘주체의 해석학’의 의미와 배경, 고대 그리스 철학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푸코의 사유 궤적: 구조에서 주체로
푸코는 초기에는 구조주의자나 포스트구조주의자로 불리며, 인간 주체의 자율성을 비판해 왔습니다. 『말과 사물』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 구성물이며, 곧 “사라질 얼굴”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1권에서는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주체를 생산하는지, 곧 권력-지식-주체의 삼각 구도 속에서 주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푸코는 이러한 권력 중심의 분석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실천하며, 어떤 윤리적 태도를 취하는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주체화’하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이때부터 푸코는 ‘자기-배려(epimeleia heautou)', ‘진리 말하기(parrhesia)', ‘자기 기술(technologies of the self)'과 같은 개념을 중심으로 ‘주체의 해석학’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2. ‘주체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푸코는 1981~1982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주체의 해석학」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그는 서구 철학의 전통 속에서 ‘자기 인식(gnōthi seauton)'과 ‘자기 배려(epimeleia heautou)'라는 두 명제를 구분하며, 서양철학이 지나치게 전자에 집중한 반면 후자를 잊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인식 vs 자기 배려
푸코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서부터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기 배려’는 존재론적, 윤리적, 정치적 차원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는 특히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스토아 철학,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등의 고대 사유를 분석하며, 자기 자신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능력으로서의 ‘배려’ 개념에 주목합니다.
즉, 푸코가 말하는 ‘주체의 해석학’이란, 주체가 단순히 인식이나 외적 규율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실천, 담론, 훈련,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3. ‘자기 배려’와 ‘자기 기술’
푸코는 후기 강의와 저작에서 ‘자기 배려’(epimeleia heautou)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자기 기술’(technologies of the self)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행하는 다양한 실천들을 가리키며, 푸코는 이를 네 가지 ‘기술’ 중 하나로 분류합니다.
- 생산의 기술 (기술적/경제적 기술)
- 의사소통의 기술 (상징과 기호를 사용하는 기술)
- 권력 기술 (규율, 통치의 기술)
- 자기 기술 (자기 자신에 대한 실천과 구성)
자기 기술은 주체가 스스로를 윤리적 존재로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을 포함합니다. 예컨대 고대에서는 일기 쓰기, 명상, 자기 고백, 금욕 훈련, 침묵 등의 방식이 포함됩니다.
4. 권력과 윤리: 자기 실천의 정치성
푸코의 자기 기술론은 단순히 개인의 자기계발을 넘어,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전략으로도 기능합니다. 그는 후기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 권력에 종속된 주체가 아니라, 권력 속에서도 자율적으로 자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 이는 기존의 정치적 실천(투쟁, 혁명)을 넘어선 ‘삶의 형식’으로서의 윤리적 실천이다.
예를 들어, 푸코는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처럼 사회적 관습을 전복하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통치를 구현하는 철학자를 ‘진리의 말하기(parrhesiastes)’로 소개합니다. 파레시아(parrhesia)는 미셸 푸코가 후기 철학에서 강조한 개념으로,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발화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파레시아는 권력자 앞에서 비판을 하거나, 사회의 통념을 거스르더라도 진리를 드러내는 실천입니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디오게네스나 소크라테스의 삶 속에서 이 개념을 찾았습니다. 파레시아는 자기 배려의 실천, 자유의 행위, 그리고 정치적·윤리적 책임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파레시아는 말하는 자의 진정성과 삶의 일치를 요구하는 ‘삶의 기술’입니다. 이처럼 자기 배려와 진리 말하기는 단순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삶 전체의 형식(form of life)을 관통하는 실천이 됩니다.
5. 고대 윤리에서 근대 규율로: 잃어버린 전통
푸코는 고대의 윤리적 자기 실천이 기독교적 고백 문화와 근대의 규율 권력 속에서 사라졌다고 봅니다. 중세 이후 서구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신 앞에서의 죄의 고백, 내면의 탐색, 정체성의 규정으로 변질되었고, 이는 근대 권력 장치 속에서 감시, 규율, 정상화로 이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제도화된 체계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푸코는 이것을 다시 ‘윤리의 실천’으로 회복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6. 푸코의 주체 해석학의 현대적 함의
오늘날의 우리는 자아정체성의 혼란, 삶의 의미에 대한 불안, 소셜미디어로 인한 자기 이미지의 조작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시대에 푸코의 주체 해석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자기 배려는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 실천이다. 푸코가 말하는 자기 기술은 단순한 성공 전략이 아닌, 진실하게 말하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 진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진리는 명제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일치하는 실천적 진리로 나타난다.
- 윤리는 정치적이다. 개인의 삶의 형식은 구조와 제도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이러한 푸코의 통찰은 현대 사회 속에서 주체성의 회복, 윤리적 삶, 권력의 내부로부터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강력한 철학적 도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푸코는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내 삶이, 내가 철학적으로 생각한 것과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철학적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삶의 형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푸코에게 철학은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삶의 기술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구성하고 배려하는 실천을 통해, 우리가 단순히 사회적 주체로서만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존재로서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실제 푸코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사유과 현실 삶 속에서 고민하고 투쟁하며 모순 속에서 괴로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주체의 해석학’은 지금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에 대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진실하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