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이완의 정체성
타이완의 국호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운 중국 최초 근대 공화국의 이름이다. 그러나 혁명 세력은 곧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분열했고 쌍방의 치열한 내전이 수십 년간 전개되었다. 1949년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자 타이완으로 쫓겨 간 국민당은 그곳에 중화민국 정부를 세웠다. 국민당 정부가 중화민국의 국호를 사용한 것은 중국 최초 근대 공화국 적통임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타이완에 불리하게 전개되어 UN(국제연합)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정식 회원국 자격을 부여하면서 타이완은 UN에서 탈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타이완은 우방국들과도 국교 단절을 겪어야 했고, 한순간에 국제사회의 고아가 되어 버린 트라우마가 타이완인들에게는 남게 되었다. 존재의 근거가 뿌리째 흔들리는 듯한 공황, 불안, 허무의 정서는 이후 1970년대를 회상하는 타이완 문학작품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2. 모더니즘과 타이완 문확
1960년대 탄생하여 1970년대 만개한 모더니즘은 타이완 문학의 질적인 도약을 가져왔다. 이는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특히 유럽보다는 영미 현대문학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모더니즘 작가들은 미국식 근대와 자유의 이념을 흡입하면서도 그로부터 자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문학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들이 주장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타이완의 엄혹한 현실에 저항하는 정치적 콘텍스트 안에 있었다. 특히 타이완 모더니즘의 특징은 장소성에 대한 특별한 감각인데, 대부분의 모더니즘 작가들이 외성인으로 1949년 국민당을 따라 내려온 집단이다. 타이완 모더니즘의 정전으로 추앙받는 <타이베이 사람들>(1971)의 저자 바이셴융은 몸은 타이베이에 있지만 마음은 대륙에 귀속된 탈구된 내면의 공황, 공포, 허무의 감정을 그렸다. 훗날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전통 세계로부터 벗어나 타이완이라는 폐쇄된 작은 섬에 유폐되었다는 공포감"을 담았다고 말했다. 1973년 출간된 왕원싱의 장편소설 <가변>은 아들의 학대에 못 이겨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국민당 군사정권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억눌려 있던 타이완 청년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3. 서구주의에 대한 반발과 향토문학
1977년 개시된 향토문학의 슬로건은 '향토로 돌아가자'로 타이완 문단을 지배했던 서구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했다. 향토문학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독일의 향토예술운동에 연원한다. 향토예술운동은 산업화와 근대화에 저항하여 대도시로부터의 탈출, 기술 문명에 대한 저항, 고향과 자연에 대한 예찬을 강령으로 삼은 문학 운동이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근대화에 뒤처졌던 독일은 외래에서 들어온 근대 문명에 대한 반감이 컸다. 타이완의 향토문학 운동도 이와 유사한 맥락을 지녔다. 향토문학은 이념 면에서는 민족문학 운동이었고 창작 방법에서는 리얼리즘 운동이었다. 또한 1970년대 타이완은 미국과 일본의 원조 경제를 기반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며, 그 과정에서 극심한 도농 격차, 빈부 격차, 노동 착취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향토문학은 계급문학적 성격도 지녔다. 그런데 1970년대 향토문학 논쟁에서 제기된 향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상당히 모호하다. 1970년대 향토는 일종의 텅 빈 기호였는데, 보수주의자들은 향토를 전통적 대중국 의식으로 받아들였고, 좌익 지식인들은 이를 계급적 현실로 이해했으며, 타이완 본위를 주장하는 본토파에게 향토는 대륙이 아닌 타이완섬을 뜻했다. 나아가 향토의 의미는 전 세계 제국주의에 반대한 제삼세계 연대의 장의로 확장되기도 했다. 그리고 향토가 타이완 지식계에 뜨거운 화두로 부상한 것은 성적 모순과 통독 논쟁이 타이완 사회 갈등의 주요한 테마가 된 1980년대에 와서였다. 성적 모순이란 외성인과 본성인 간의 에스닉 갈등을 뜻하는데, 이를 추동하는 것인 통독 논쟁으로 타이완이 중국과 통일해야 하는지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외성인 집단과 본성인 집단 간의 갈등이다.
4. 시노폰 문학론
중국이라는 위협적인 타자로 인해 타이완 문학은 수시로 정체성의 심문대로 불려 나올 운명과 함께 중국 문학의 외연으로 타이완 문학을 간주하는 중국 학계의 화문문학론에 대항하여 근래 타이완과 서구학계에서는 종주국인 중국어의 정통성을 해체하는 독자적 로컬리티를 강조하는 시노폰(Sinophone) 문학론이 제기되었다. 시노폰 문학은 중국 대륙 바깥 세계 각지에서 표준 중국어와 다른 화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이 화문으로 창작한 문학을 말한다. 타이완 문학에 태생적으로 내재한 유랑성과 부유성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오히려 자산인데, 세계 각지로 이주한 중국계 후손들이 사용한 비표준 중국어 또는 이주한 지역의 언어와 혼종된 비표준 중국어로 쓴 문학을 의미하는 시노폰 문학은 언어 분류에 따른 문학 개념, 문학비평 용어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모호하고 불안정한 개념이기도 하다. 중국의 초기 화문문학 연구는 세계 각지로 이주한 화인의 성공을 찬양하거나 고난을 동정하는 동시에 그들의 뿌리에 대한 애착, 문화적 향수, 중국 정체성을 키워드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컸다. 그 후 이문화와의 교섭 과정에서 중국성을 객관화하여 그간의 중화 문화에 대한 반성적 시각을 담고 있는 화문문학의 독특한 정감을 감지하는 중국 학자들도 있으나 여전히 중국 학계가 화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내셔널리즘이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디아스포라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민자, 난민, 망명자 등 다양한 이주, 이동의 주체를 가리키는 말로 폭넓게 사용된다. 이 용어는 가로지르다라는 뜻의 'dia'와 파종하다, 흩뿌리다라는 뜻의 'speirein'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말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난 유대인 공동체를 지칭했고, 1990년대 이후 디아스포라는 이산의 경험을 통칭하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이동의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영미권 학계에서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문학은 출신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명한 이주자들의 정체성과 문학을 의미한다. 조국에 대한 기억과 신화를 공유하거나 조국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는 점, 조국의 번영과 보존에 헌신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점, 민족 공동체 의식을 장기간 유지하는 등의 요소들 때문에 디아스포라는 장거리 또는 원거리 민족주의로 인식되었다. 시노폰은 디아스포라에 내포된 이러한 내셔널리즘적 인식과 가치 평가를 문제 삼으면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