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름다움”을 기계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바라볼 때, 또는 누군가의 얼굴을 스쳐 지나칠 때, 우리는 ‘아름답다’ 혹은 ‘이상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은 직관적인 듯하면서도, 수많은 기억, 문화, 사회적 맥락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인식할까?
오늘날의 AI는 딥러닝 기술을 통해 얼굴을 인식하고, 사진을 분류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판별한다. 이때 기계가 ‘보는’ 방식은 사람의 눈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수천만 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턴 감지와 확률 계산의 응시이다.
2. 알고리즘적 응시: 인간의 시선을 닮은, 그러나 전혀 다른
‘응시’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를 인식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응시는 감정과 기억, 문화적 코드, 무의식의 흐름이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인 작용이다. 반면 인공지능의 응시는 입력된 데이터와 훈련된 기준에 따라 작동한다.
예를 들어, AI 미용 앱은 얼굴의 대칭성, 피부 밝기, 눈의 크기와 간격 등의 요소를 분석해 ‘매력 점수’를 매긴다. 이 과정에서 AI는 수많은 이미지에서 통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특징을 기준 삼아 새로운 얼굴을 평가한다. 다시 말해, 기계가 보는 ‘아름다움’은 훈련된 집단의 응시를 복제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 응시는 누구의 응시였는가?”
3. 데이터 편향과 미적 기준의 획일화
AI의 미적 판단은 결국 누가 어떤 데이터를 입력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특정 인종, 성별, 문화권의 이미지가 중심이 된다면, 알고리즘은 그 범위 밖에 있는 미(美)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배제하게 된다. 이는 응시의 편향이 데이터로 전이되어 ‘미의 기준’이 하나의 규범으로 고정되는 위험을 낳는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서구 중심의 얼굴 인식 AI는 유색인종의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여성보다 남성을 더 정확히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미적 판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AI는 아름다움을 ‘객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선의 총합을 ‘표준화’하는 것이다.
4. 생성 AI와 새로운 미학: 기계가 창조한 아름다움은 인간적인가?
최근에는 Midjourney, DALL·E, Runway와 같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AI가 등장하며 ‘기계는 미적 창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AI는 인간이 입력한 텍스트 프롬프트에 따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결과물은 종종 놀랄 만큼 아름답고 정교하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시각적 기대치를 학습한 결과물이다. 인간의 취향, 미술사의 패턴, 디지털 트렌드 등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인간이 반응할 법한 이미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는 다음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계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움을 되돌려주는 거울인가,
아니면 새로운 응시의 주체인가?”
이러한 AI의 생성 이미지는 관람자의 응시를 유도하면서도, 역으로 새로운 미적 기준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응시의 순환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작이자, 기계-인간 공동 창작의 미적 장(場)이다.
5. 응시의 윤리: 감시, 자기검열, 그리고 ‘보여질 권리’
AI의 응시가 문제가 되는 또 하나의 영역은 감시와 통제이다. CCTV, 안면 인식, 행동 예측 기술 등은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데이터화하고, 평가하고, 예측한다. 이 응시는 더 이상 ‘보는 자’의 감정적 개입이 아니라, 감정 없는 감시자의 눈이다.
이런 응시 속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의식하고 조정하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웃는 얼굴, SNS에서 필터를 입은 얼굴, 자기 검열적 자아는 모두 알고리즘의 눈을 의식한 자기표현의 결과다. 응시는 감정이 아니라 권력이며, 통제 도구가 된다.
6. 기계의 아름다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질문은 여기에 이른다. 기계가 보는 아름다움은 누구의 시선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응시는 인간의 시선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시선을 길들이고, 규격화하며,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의 가능성, 비표준적인 매력, 문화적 다양성은 점차 희미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 기계는 아름다움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 우리는 기계의 응시에 스스로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AI 시대의 미적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에 강력한 통제 구조를 내포한다. 아름다움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감상이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시선과 코드, 규범이 교차하는 복잡한 정치적 현상이다.
응시란 결국 ‘누가 누구를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그 시선의 주체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더더욱 ‘기계의 눈’에 맞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아름답다고 말하는가?”를...
응시와 아름다움: 우리가 ‘보다’라는 행위에 대해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눈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볼 때, 손이 그리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은 그 자신의 모사들을 촉발함으로써 존재케 한다. 더불어 시각적 사건은 촉각 영역에서 자신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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