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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의 과학과 홀로스 사고

by 문화과학자 2024. 2. 16.

2000년대 초 많은 컴퓨터 전문가들과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최대 10년 이내에 인간의 두뇌와 맞먹을 정도의 용량을 가진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할 것으로 예견했었습니다. 애초에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에 의해 인간이 오히려 컴퓨터의 시종이 스스로 되어 버릴 것이라는 당시의 예언은 10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간과 기계의 역할이 뒤바뀌어 우리가 기계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지금까지는 우리가 기계의 주인이었지만 점점 윤리개념이 희박한 기계에게 우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아, 인텔리전트 빌딩에서 기계가 잠가 놓은 자동문으로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고, 첨단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간은 풍요와 편리를 얻은 듯하지만, 결국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미래 예상 시나리오는 10년 뒤 진짜 그 현실을 살고 있는 지금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지구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꾼 산업혁명은 실패로 끝난 실험이었다는 결론과 함께 산업 사회 종말 후 등장한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사고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히 요청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과학이론은 결코 현실 세계의 유일한 진리가 아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주객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패러다임을 창조해 낸다. 동일한 현실이라도 상이한 패러다임으로 설명될 수 있다.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론은 현실에 대한 유일한 해석이 아니며, 그것의 정의 역시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범위를 지니며, 그 범위를 넘어서면 타당성을 잃게 된다. 패러다임은 영원할 수 없으며, 변화와 전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장파, 1994). 

 

새로운 과학사고는 복잡계이론과 맞물리는 통일장이론을 지향합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를 설명하려는 기존 과학의 한계는 분명하고, 과학사고 역시 삶의 전체성을 포괄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홀로스 사고는 기존 과학 개념에서는 비(非)과학적 사고이지만, 전체를 포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홀로스 사고(Holos Thinking)는 과학사고입니다. 

1. 패러다임의 전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의 대화편인 《티마이오스(Timaios)》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paradeigma)입니다. 플라톤에게 패러다임은 그의 이샹향인 이데아(idea)를 의미했습니다. 패러다임이란 사물의 원상을 의미하는 범례, 모형, 견본 등을 지칭합니다.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란 지금까지의 관념, 준거 틀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합니다. 20세기 미국 과학사가인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 1962)은 과학의 세계에는 단층적으로 과학의 발전이 목격된다고 하면서 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2. 사회시스템과 전체성

그리스어로 '함께 두다'를 뜻하는  'synhistanai'에서 유래한 시스템(system)은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서 본질적 특성이 발생하는 통합된 전체를 의미합니다. 시스템 개념을 과학의 세계에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20세기 미국의 생화학자 로렌스 헨더슨(Lawrence Henderson)으로, 그는 생물체와 사회구조 모두를 시스템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합니다. 사회라는 삶의 공동체도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자연시스템과 달리 사회시스템은 이론적 시스템인데, 이론적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과 달리 소멸해도 흔적이 남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은 스스로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시스템사고는 인간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인간은 사회시스템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객관적 사회시스템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처럼 고도로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 관계로 인해 수직적 위계 구조 사회시스템을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수직적 지배 시스템은 애초 구형의 순환적이고 상관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자연시스템과 다릅니다. 보통 시스템의 형태 변화와 함께 삶의 형태도 변화합니다. 사회시스템은 그때그때마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이며 보편타당하기에,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은 당대의 역사적 사회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에 적합한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경쟁적 사회시스템 안에서 이성은 종종 도구화되는데, 헝가리 미학자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cas)는 '도구적 이성'을 명명합니다. 이성은 얼마든지 부와 권력에 의해 도구화될 수 있고, 이러한 도구적 이성의 작용으로 권력지향의 경쟁시스템이 구축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적으로 이성의 객관성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독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임마뉴엘 칸트는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이성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고, 프리드리히 헤겔은 인간의 이성이 이상적으로 객관화되는 장소로서 절대정신을 변증법적으로 규명했습니다. 지금처럼 도구적 이성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보편적 사고의 기준으로 작용할 객관적 이성에 의해 구축되는 순수한 삶의 시스템, 홀라키(Holarchie) 구조의 일상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그것이 전체성 사고이고, 홀로스 사고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전체성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나지만, 역사 과정 속에서 늘 제한된 사회시스템 속에서 살며 마치 그것이 전체인 양 제한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사, 사회적으로 늘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다른 시스템사고를 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은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만, 그렇게 사고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이론물리학에서 복잡계이론(complex systems theory)은 인간의 역사과정에서 야기된 수많은 시스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제한된 사고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스템이란 본래부터 열린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시스템 속에서는 얼마든지 비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살아 있는 시스템들은 반드시 자신의 환경과 상호교환합니다. 이것이 공동체적 삶의 속성입니다. 공동체는 삶의 전체성으로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삶이 아름답고 정상입니다.

 

3. 홀로스 사고의 특징 

1) 열린 사고

현대이론물리학의 복잡계이론은 모든 시스템들이 자유도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온도가 올라가 무질서도가 증가한 분자의 밀도는 자유롭게 확장되어 열린 시스템으로 전환됩니다. 이처럼 자유로운 무질서에 의해 분자 배열은 새롭게 창조되는데,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은 생성과 동시에 엔트로피 증가에 의한 소멸을 전제하기에, 소멸되는 삶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계속 창조하고 보충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문화를 창조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귀족이나 양반이었습니다.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노예나 노동자 계층에게서 창조된 문화는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자유로움은 창조적 사고에서 결정적 요인입니다. 문화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1958: 356)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과 본성은 자유입니다. 홀로스 사고는 미지의 삶의 영역을 자유롭게 열어 놓는 자유 사고이며, 자유롭게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전체에 접근하여 전체를 발견해 내고자 하는 발견적 사고이기에 창조적입니다. 또한 열린 사고는 발산적 사고인데, 발산적 사고란 닫힌 사고 공간에서 가능한 한 멀리 자유롭게 탈출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독일 철학자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는 자신의 저서 《컨트롤된 카오스》(1995)에서 카오스를 아직 발견되지 않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간주합니다. 즉 카오스란 질서(코스모스)의 반대가 아닙니다. 카오스는 숨겨진 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일시적 현상으로 질서의 이면입니다. 그는 현대인들이 카오스와 적극적으로 화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흔히 증권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주식 변동은 카오스 이론이나 복잡계이론으로 설명되는데, 증권시장의 경제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여 비선형적인 모델을 요구합니다. 소위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투자자들의 미세한 움직임이 주식 변동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권시장에 대한 예측은 보다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매우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요약되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카오스 사고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주 미세한 요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때때로 결정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더욱이 만물이 지식과 정보의 망으로 꼼꼼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카오스에 의한 변화와 카오스 사고는 때때로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작은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카오스 사고입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을 예사로 지나치지 않는 습관은 카오스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미지의 세계는 우리를 비록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역동적 통찰력을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카오스 사고는 발산적 사고와 함께 이루어질 때 보다 효과적입니다.

2) 해석학 사고

해석학 사고란 말 그대로 삶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사고 능력을 말합니다. 삶의 문맥을 해석하고 삶을 해석하는 사고가 바로 해석학 사고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해석학 사고의 궁극적 목표는 이해입니다. 우리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삶을 해석합니다. 삶은 본질적으로 상징성과 의미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삶은 그대로 이해될 수 없고 반드시 먼저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논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게슈탈트(Gestalt)란 형태를 의미하는 독일어로 확장적 의미는 전체적 형태를 지칭합니다. 우리는 형태, 즉 전체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게슈탈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20세기 초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Christian von Ehlenfels)라는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개념적 이해를 기반으로 베르트하이며(Max Wertheimer)와 퀠러(Wolfgan Kohler) 등에 의해 소위 게슈탈트 학파의 심리학적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형태(게슈탈트)는 전체와 동일합니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의 합을 넘어서며, 전체는 부분의 합으로 환원이 불가능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게슈탈트란 의미 있게 조직된 전체로서 부분들에게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전체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래 분업화된 영역에서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은 삶의 전체성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전체성이라는 윤곽이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어렴풋하더라도 전체(홀로스)를 느낄 것입니다. 현실과 가상이 합해진 전체 속에서 전경과 배경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홀로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고 영역이 전경과 배경의 교차하는 전체 과정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한편 현대이론물리학에서는 소립자 세계에서는 장(field)의 움직임에 따라 물체가 움직이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장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물질이 생성 소멸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스템이론에서는 환경 속의 나라는 개념을 줄곧 일반화시켜 왔습니다. 환경과 공진화하면서 내가 되고,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통하여 자아정체감(self-identity)을 형성하게 됩니다. 삶은 나와 너라는 하나의 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삶이라는 장 속에는 삶의 에너지로서 장 에너지가 흐르는데, 장 에너지의 흐름이 삶을 결정합니다. 장을 인식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인식이며 이는 전체에 대한 인식이기도 합니다. 장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은 삶을 전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피드백 사고 

생태학적 결론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우주와 삶의 홀로스 속에서는 항상 피드백(feedback)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행위자는 피드백 과정의 한 부분이지 그것과 유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고 영역에서도 피드백 되는 과정이 인지될 수밖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홀로스 사고를 하면서 살고 있다면 사고의 피드백은 보다 빈번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아울러 가정된 홀로스 사고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피드백 사고는 홀로스 사고의 윤곽을 보다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생명은 공생, 즉 상호 관련 및 상호의존의 연결망 관계로 성립될 때 생태공동체를 가능하게 합니다. 즉 공생을 통해서 개체의 생명현상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상호의존이라는 연결망에 얽혀 있는 생태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생태학은 인간이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고 생명 자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성립되었습니다. 또한 연결망간의 의사소통은 피드백 과정을 통해 생물에게 자기 조직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로써 생물시스템은 생명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자기 조직화하지 못하는 생물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생물은 자기조직화 능력 때문에 소멸하려는 경향의 엔트로피를 상쇄할 수 있으며, 서로 차별화되어 특성화될 수 있습니다.

그물로 연결된 망 속에서 전체를 파악하는 사고를 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네트워킹 사고를 하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의 의사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그물망은 네트워킹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 의사소통은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분산 네트워크 시스템은 오늘날 전체 경제의 기반입니다. 네트워킹은 인간이 살아가는 본능이며 본질입니다. 오늘날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구축되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해 의사소통시스템을 가속화시키는 사고유형을 네트워킹 사고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는 네트워킹에 익숙하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네트워킹 사고에 능숙한 사람들은 네트워킹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사회의 오류도 인지하고 이를 판단 시정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드백 사고는 삶이 순환된다라는 리사이클링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부메랑 사고, Give&Take, 자승자박, 사필귀정은 모두 거울 사고입니다. 거울 속에서 우리는 전체의 모습을 인식하게 됩니다.

4) 복잡계 사고

우리의 삶은 단순한 순환이나 재생이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의 순환입니다. 현대이론물리학의 시스템이론, 생태학에서 밝혀 주는 것도 삶의 복잡성입니다. 복잡계이론은 매우 복잡하게 형성된 사물 속에 일정한 규칙이 들어 있음을 밝혀내는 이론을 말합니다. 복잡계 사고는 우선 비선형적 사고로부터 시작되는데, 비선형 사고란 일차원적 선형 사고가 아니고 다차원적이면서 다면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잡 순환형 사고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이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입니다. 비선형 사고는 확률 사고와 밀접합니다. 모든 일에 완전한 것은 없고, 인간의 삶은 확률로서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률 사고에 익숙해지면 상대방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경쟁과 투쟁의 구시대적 패러다임 속에서 상대방의 모자람은 나와 무관하며 심지어 나에게 득이 되기도 했었다면, 오늘날은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부자들도 살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모자람에 대한 방치는 나에게도 득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윈윈(win-win) 전략을 짜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혼자 살아남으면 되지만, 오늘날은 공생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원래 모든 생명이 공생으로 살아남았듯이 이제 우리는 삶이라는 공생의 원리에 따라 함께 살아남아야 합니다.  

5) 홀로스 사고

비선형 사고와 확률 사고로 구현되는 복잡계 사고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전체성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홀로스(holos) 사고의 경지에 이릅니다. 홀로스는 전체, 모두, 완전을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홀리스틱(holistic)은 홀로스의 형용사 표현으로 '전체적', 때때로 '대안적'으로 해석됩니다. 지금까지 사회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발전해 온 관계로 이제는 새로운 다른 쪽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소위 도구적 이성의 활약은 우리의 역사적 사회시스템을 홀라키(Holarchie, 구형 순환 시스템)의 구조로부터 하이어라키(Hierarchie, 피라미드형 수직적 위계시스템)의 구조로 변화시켰습니다. 생명시스템의 원형은 홀로스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홀라키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홀로스 사고를 통해 홀라키 시스템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명은 고갈된 에너지가 아니고 생명으로 산출되어야지 피드백 과정을 통해 다시 생명으로 투입될 수 있습니다. 생명시스템 속 전환을 통해 산출된 결과들이 생명에너지로 재투입되면서 생명은 되살아납니다.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투입-전환-산출의 도식은 공동체로 살아남을 때 가장 분명한 대의명분을 가지게 되고 가장 잘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 이론에 의하면 시스템의 생존 원리는 항상성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으로의 피드백 과정과 성장 변화를 통하여 네거티브 엔트로피를 생성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생태학적 발견에 따르면 인간은 주변과 공생하면서 살기도 하지만 주변환경과 공진화하면서 복잡 시스템으로 전개됩니다. 이미 인간학(Anthropologie)에서도 인간은 문화 및 자연환경과 서로 구속적 관계로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결과 수평 구조 속에서 서로 교류하고 열린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력하면서 터득한 지식으로 상호 공진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생명에 보다 활력을 주는 생명에너지를 계속 창출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부분들은 전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포괄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면, 활기 잃었던 것들도 다시 의미를 얻어 생명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유연한 사고를 실천하는 가운데 홀로스 사고는 시작됩니다. 홀로스 사고는 모두의 상생을 위한 전제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사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