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자기 통제나 자기 강화, 자기 비밀을 위한 해독이나 단지 자신의 표현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이든 간에 이것은 모두 주체가 자기 자신의 쾌락과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보다 넓은 차원에서 자기와 자기의 관계를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셸 푸코의 진실과 주체가 맺는 관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기 배려(souci de soi-meme)'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푸코는 그리스 문화 전반에 걸쳐 오랜 생명력을 가졌던 epimeleia heautou를 자기 배려로 해석합니다.
Epimeleia heautou
epimeleia heautou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체 문제를 다룰 때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라는 유명한 델포이의 신탁을 떠올리지만, 푸코는 자기 인식(gnothi seauton)과 자기 배려(epimeleia heauton)의 관계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표현은 자기 배려에 종속된 상태에서 표현된다고 말합니다. 즉 자기 인식은 자기 배려라는 보다 일반적인 범주의 한 형식, 한 결과 또는 한정된 보편적 규칙의 특수한 적용입니다. 자기 배려 개념은 기원전 5세기 무렵 탄생해 기원후 4-5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모든 철학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신앙생활까지 관통합니다. epimeleia heautou(자기 배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물을 고려하는 방식, 세상에서 처신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타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과 같은 일반적인 태도의 테마입니다. Epimeleia heautou는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태도입니다.
- epimeleia heautou는 주의를 기울이는 시선의 일정한 형식입니다. 자기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데, 시선을 외부, 타인, 세계 등으로부터 내부(자기 자신)로 이동시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 배려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사유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정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훈련과 명상을 의미하는 melete와 epimeleia의 유연 관계가 있습니다.
- epimeleia는 또한 항시 자신에게 가하는 다수의 행위를 지칭합니다. 이 행동들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변형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킵니다. 바로 여기로부터 일련의 실천들이 기인하고, 이러한 기인들은 심상(心象) 점검 기술로 서구 문화사·철학사 내에서 아주 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되었던 훈련들입니다. 그것은 명상 테크닉, 과거에 대한 기억술, 의식 점검의 테크닉 등입니다.
영성과 진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에 대해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바에 대해 묻고,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에 물음을 던지는 사유의 형식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변형을 가하는 탐구, 실천, 경험 전반을 '영성'이라고 한다면, 영성은 주체의 존재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를 구성하는 정화, 자기 수련, 포기, 시건의 변환, 생활의 변화 등과 같은 탐구, 실천, 경험 전반을 말합니다. 영성은 진실이 충만한 권리로 주체에게 결코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정합니다. 진실에 도달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주체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변형하며 이동하고 어느 정도와 한도까지는 현재의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제합니다. 영성은 상이한 형태하에서 행해질 수 있는데, 주체를 현재의 신분이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활동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작업은 자기 수련이라는 장기간의 노력 속에서 자신이 그 책임을 지는 자기에 의한 자기 자신의 점진적 변화입니다. 영성은 진실에의 접근이 시작되었을 때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행해진 영적인 절차들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다른 것에 상당하는 효과, 즉 주체로의 진실의 귀환이라 부를 수 있는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진실은 주체에게 지고의 복락을 부여하고, 영혼의 평정을 가져다줍니다.
인식과 진실
고대 전반에 걸쳐 영성의 문제는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 변형의 총체였다면, 근대로 접어들어 진실에의 접근은 오직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근대 철학자들은 자신의 주체 존재를 변형시키라는 어떠한 요청도 받지 않고 철학자는 자기 자신 안에서, 오직 인식 행위만을 통해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고, 또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푸코의 주체성과 진실이 맺는 관계의 역사는 데카르트의 순간에 '너 자신을 알라'를 복권시키고, '자기 배려'를 실격시킵니다. 데카르트 철학의 절차가 주거하는 곳은 적어도 의식의 형식으로서의 자기 인식입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의 주체는 근본적으로 참된 인식의 주체라기보다는 곧은 행동의 주체입니다. Logos는 인식의 완성보다는 행동의 곧음을 실현해야 합니다. 배려의 주체는 진실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