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름다운 소녀가, 아주 잔혹하게 등장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그 안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서 물음표와 '...'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봤던 영화는 2008년 원작이 아니라 2010년 개봉한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바로 그 영화가 2025년 연극으로 각색되어 국립극장에서 개막한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게 가능해?'였습니다. 영화의 묘미를 연극 무대에서도 작품성이 훼손되는 일 없이 과연 재창조할 수 있을지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려 봅니다. 이 글에서는 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렛미인' 공연 정보를 제공하며, 관람 전 확인해 두면 좋을 원작 렛미인도 함께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2008)
2008년작 영화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은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John Ajvide Lindqvist)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토마스 알프레드손(Thomas Alfredson)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그해(2008)에 다음과 같은 상들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 21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외국어영화상, 유망감독상)
- 41회 시체스영화제(골드 멜리스-유럽최우수작품상)
- 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천 초이스: 장편 감독상, 푸르지오 관객상)
- 12회 판타지아 영화제(슈발누아경쟁 - 최고 작품상, 슈발누아경쟁 - 감독상, 촬영상, 관객상-베스트 국제영화(금))
- 7회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최우수 장편영화상)
장르는 호러, 드라마, 성장영화 등으로 분류되지만, 단순한 뱀파이어물로 보기엔 지나치게 섬세하고, 슬프며, 철학적입니다. 뱀파이어 장르를 넘어선 순수하고 잔혹한 성장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이 영화는 12살 소년 오스카(Oskar)와 수수께끼의 이웃 소녀 엘리(Eli)의 관계를 중심으로 외로움, 폭력, 욕망, 정체성, 인간됨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합나다.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어."
1) 줄거리 요약
스웨덴의 한 눈 덮인 교외, 외톨이 소년 오스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며, 상상 속에서 복수를 꿈꿉니다. 어느 날, 그의 옆집으로 의문의 소녀 엘리와 수상한 중년 남성이 이사 옵니다. 엘리는 "나는 12살이지만 오래됐어"라고 말하며 오스카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은 외로운 존재끼리의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을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피를 모두 빼앗긴 채 발견되고, 관객은 엘리와 그녀의 수호자 '하칸'이 이와 관련되어 있음을 점차 알게 됩니다.
2) 『렛 미 인(Låt den rätte komma in)』의 주요 테마
(1) 뱀파이어, 존재론적 은유
엘리는 피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전통적인 괴물 서사로 풀지 않습니다. 엘리의 뱀파이어성은 외로움과 사회적 소외, 심지어 퀴어 정체성의 메타포로 읽힙니다.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그녀의 ‘인간성’을 조명합니다. 엘리가 초대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설정은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아'를 은유하며, 이는 철학자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2) 성장의 폭력성
오스카는 폭력을 당하는 동시에 폭력을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가 엘리를 만난 후 자아를 각성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던 폭력에 맞서는 모습은 성장영화의 한 축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 성장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오스카는 결국 사회와 결별하고, 엘리와 함께 '비정상성'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 결말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성장의 이면에는 잔혹한 상실과 선택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3) 순수함과 공포의 공존
영화는 장면마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뱀파이어의 잔혹함을 병치시킵니다. 예를 들어, 오스카와 엘리가 큐브 퍼즐을 맞추거나 벽을 사이에 두고 모스를 주고받는 장면은 애틋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엘리는 사람의 피를 핥습니다. 이러한 대비는 관객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유발하며, 인간의 본성과 악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3) 영화의 철학적(미학적) 분석
(1) 북유럽적 정서
전체적인 색감은 차갑고 침잠되어 있습니다. 설원, 회색빛 아파트, 침묵하는 인물들... 이 모든 요소가 스칸디나비아적 '우울과 고독'을 상징합니다. 이는 오스카와 엘리의 내면을 반영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2) 느린 호흡과 절제된 감정
할리우드식 공포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극단적인 사운드나 편집 없이 공포를 만듭니다. 긴 침묵, 느릿한 카메라 무빙, 간헐적인 폭력... 이는 감정의 과잉이 아닌 현실적 ‘정서’를 강조하며, 마치 베르히만(Bergman)의 영화적 계보를 잇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3) 퀴어 코드와 젠더의 탈구조화
원작 소설에선 엘리가 사실은 생식기가 제거된 과거 소년이었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화에선 이를 암시 수준으로 남기되, ‘나는 소녀가 아니야’라는 엘리의 대사가 관객에게 젠더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엘리의 존재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괴물, 어린이와 어른,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 사이의 경계에서 부유하며, 이는 주디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 이론과도 접점을 가집니다.
(4) 결말 해석: 사랑인가 공모인가
영화의 마지막, 오스카는 괴롭힘을 당하던 수영장에서 엘리에게 구원받습니다. 이후 그는 기차를 타고 엘리와 함께 떠납니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오스카가 ‘하칸’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리라는 암시를 느낍니다. 이는 구원의 순간이자 파멸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오스카는 이제 엘리와 함께 살인과 피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생존과 사랑을 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복합적 결말은 윤리적 질문을 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은, 때로는 윤리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영화를 보고 드는 이 씁쓸한 기분은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2. 연극 <렛미인> 개막 예정 및 예매
1) 연극 <렛미인> 개막 예정
이 어마어마한 작품이 2025년 우리나라에서 연극으로 재탄생한다고 합니다. 공연은 2025년 7월 3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한 달 반 정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 기간: 2025. 7. 3 ~ 2025. 8. 16 (※ 프리뷰 : 7/3(목) ~ 7/6(일) 오후 2시 공연)
-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 관람시간: 140분 (인터미션 20분)
- 관람연령: 14세 이상 관람가 (* 중학생 이상의 두려움 없는 십대들부터 관람 가능)
- 공연일정: 화-금 오후 7시 30분 / 토-일 오후 2시, 6시 30분 / 월 공연 없음
- 극본: Jack Thorne / 연출: John Tiffany
- Character & Cast
일라이 – 권슬아, 백승연 │ 오스카 – 안승균, 천우진 │ 하칸 – 조정근, 지현준
엄마 – 박지원│ 함베르그 경찰국장 외 – 차정현 │ 아빠 외 – 이의령 │
지미 외 – 정우재 스윙(조니 외) – 최홍혁 │ 조니 – 김재민 │ 미키 – 지준형

2) 연극 <렛미인> 티켓 예매
- 1차 티켓 오픈일: 5월 13일(화) 오후 3시 오픈
- 1차 티켓 오픈 공연 기간: 7/3(목) ~ 7/27(일)
- 티켓 가격: VIP석 99,000원
OP석 88,000원
R석 77,000원
S석 55,000원
A석 33,000원
※ 공연의 특성상 거친 언어와 행동, 욕설을 포함한 일부 충격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심신미약자, 임산부, 노약자, 학생 및 학부형께서는 본 공연 예매 시 이점을 유의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 티켓은 국립국장 사이트를 이용하나 인터파크(NOL 티켓) 단독 예매 가능합니다.

그리고 2010년, 맷 리브스 감독은 『렛 미 인(Let Me In)』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리메이크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클로이 모레츠와 코디 스밋 맥피가 주연을 맡은 이 버전은 원작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되, 미국적 정서와 액션적 요소가 더 강조되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원작의 모호하고 시적인 미학이 리메이크에선 다소 줄어들었다고 평했습니다. 반면, 리메이크는 좀 더 명확한 스토리텔링과 감정선을 제공하며, 원작의 난해함에 거부감을 가진 관객에게는 진입장벽이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렛 미 인』 리메이크(2010)와 원작(2008)의 주요 차이점: 문화와 감성의 경계를 넘다
실제 영화 『렛 미 인』(스웨덴판 및 리메이크판)과 원작 소설 『Låt den rätte komma in(원제: 옳은 자만 들어오게 하라, 2004) 사이에는 초점의 차이가 있으며, 스웨덴과 리메이크작인 미국 영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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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은 ‘초대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는 진실을 통해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뱀파이어 영화와는 차별화됩니다. 존재론적 외로움과 타자성, 사랑의 윤리적 모순, 그리고 인간성과 괴물성 사이의 애매한 경계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엘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를, 정말로, 초대할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