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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자화상

by 문화과학자 2024. 2. 11.

자화상은 화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인물화나 초상화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나 타인을 그린 그림과는 다르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마치 타인을 대하듯 그려나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자화상에는 화가 자신만이 포착하는 고유한 품성과 자아의식이 주관적인 감정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자화상은 개관적 외형과 주관적 감정이 상호 교감되며 완성된다. 

1. 자화상이란?

자화상(self-portrait)은 self와 portrait의 합성어이다. self는 '자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portrait는 라틴어 'protrahere'에 어원을 두는데, 이 말은 '끄집어내다', '밝히다'라는 뜻을 가진다. 따라서 자화상은 화가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자화상은 화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조형적 양식의 특성도 보여주지만, 화가 자신의 자의식을 표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화가들은 여러 동기에 의해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 등장배경에는 시대·역사적 흐름과 사회구조의 변화, 화가라는 직업의식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작가 스스로 선택하고 제작한 그림이기에 자신에 대한 관심, 자기애, 자아정체성 등 화가의 자아개념 확립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2. 자화상의 발전

자화상의 발전은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 차이로 인해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서양에서는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동양의 자연관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인간은 만물의 근원인 자연 속 미미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동양보다 서양에서 인물화가 발전한 측면이 있다. 

서양에서 자화상의 시초는 중세 말 제작된 각종 필사본의 가장자리에 들어가 있는 필사자나 저자들의 모습이다. 이때 나타난 자화상들은 개인의 특징을 강조한 추상이 아니라 서명을 대신하고 보완하는 수준에서의 일종의 표시였다. 진정한 자화상의 시작은 르네상스 시기로, 이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개성을 존중하며 새 문화를 창출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생산자 계급의 지위 향상으로 예술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자화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단독 자화상이 그려진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가족이나 다른 예술가들의 초상화와 같은 화면에 그리면서 그 초상화들에 각 인물의 이름을 적어 넣는 기념의 의미가 강했다. 또한 자기고백적이거나 자아분석적이기보다는 화가들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직책을 위한 자화상이 그려졌다.

이 시대 알브레히트 뒤러는 자화상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는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으며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표현한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는 뒤러의 자의식을 꽤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 뒤러는 미술가의 창조 능력을 신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여겼기에 그것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15세기 중엽에는 서명을 대신하여 자신의 모습을 화면 속에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입회 자아상 형식이 나타났는데, 화가 자신의 모습을 성스러운 의식 속에 그려 넣는 형태였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초상화에 능한 화가로 그의 작품 <시녀들>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마드리드 방을 묘사하며,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왕녀와 인물들의 모습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표현했다. 이 복잡한 초상화에는 캔버스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도 함께 그려져 있다.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발전한 바로크 미술은 종교개혁 및 막강한 왕권과 부를 바탕으로 거대한 규모와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로 꼽힌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화가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물질문명의 발달, 귀족주의의 영향과 함께 많은 자화상이 제작되었다. 더불어 이 시기에는 미술의 소재가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 일상생활로 확장되었다. 바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역시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현실의 외적인 표현뿐 아니라 자아 관찰을 통한 자의식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예술적 탐구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자화상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다양한 시기,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통해 자신의 내적인 모습을 탐구하였다. 이처럼 자화상은 위대한 화가들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 갔으며 자기 성찰과 반성적 사고를 통한 자의식의 표출로 자신의 내적 세계를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3. 근현대 자화상

19세기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여러 화가들에 의한 다양한 사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화가들의 예술적 혼이 투영된 작품들은 자화상 표현 양식에도 영향을 주어 탁월한 작품들이 출현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9세기 중반에는 사실주의 물결에 의하여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쿠르베는 강한 자의식을 투영한 수많은 자화상을 제작했는데,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 <파이프를 문 사나이>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 <파이프를 문 사나이>에서 위엄과 자만심이 가득 찬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을 오만한 사람으로 표현함으로써 강한 자기애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뒤이어 인상파가 등장하고 인상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은 짧은 순간에 시각적으로 처음 지각한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거울을 통해 자신을 탐색하는 방법은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 사진술이 등장하여 똑같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초상화의 제작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기 인상파에 들어 자화상 제작은 다시 활발해지는데, 내적 탐구가 진정한 주제였던 표현주의자들에게 자화상은 자신을 피력하기 위한 좋은 예술 표현 수단이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자기 탐구적 자화상을 그린 대표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짧은 생애 동안 4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고흐는 자신의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삶을 내면의 자아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하였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 철학을 설명하고,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강렬한 색채와 격정적인 화필을 통해 개성적으로 나타냈다. <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은 이성을 잃은 자신의 내면에서 표출된 분노와 흥분, 질병과 공포의 심경을 색채를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고흐의 내적 상태를 반영하였다. 
  • 파블로 피카소: 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인 피카소 역시 데생, 유화 작품을 합해 약 30여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과도기에 그려진 <팔레트를 든 자화상>은 색채를 배제하고 공간 속 형태와 인체를 부각한 작품이다. 1907년 제작된 피카소의 <자화상>은 입체주의 양식으로 거울을 보고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객관화시킨 자신을 표현하려는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 <죽음에 임박한 자화상>은 피카소가 죽기 1년 전에 분필과 색연필을 이용하여 그렸다. 좁은 어깨의 표현과 혼란스러운 얼굴 표정에서 세상과의 이별을 직시하며 조금은 패닉 상태에 빠진 자신의 심리적인 면을 꾸임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자신의 모습을 연출했던 쿠르베의 자화상과 달리 항상 같은 포즈와 같은 시선처리로 거울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유심히 탐색함을 보여준다. 다양한 감정을 조형 요소에 투영하는 과감한 실험 행위를 통해 고흐는 그런 의미에서 표현주의 자화상의 길을 열었다. 고흐에게 자화상은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얼굴 모습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신의 탐색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 숨어 있는 실재와 스스로가 짊어진 예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4. 표현주의 자화상 

20세기 대두된 표현주의는 대상의 객관적 표현을 배격하고,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와 색채를 사용하였다. 이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중요시하는 예술로 개인의 자아 문제, 자의식과 같은 정신적 내용의 주관적 표현을 강조한다는 의미였다. 반 고흐와 피카소를 통해 표현주의 자화상의 태동을 보았다면, 표현주의자들은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기 탐색, 자기 표현에 아주 철저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내적 본질 세계를 심도 있게 그려냈고, 자기 탐색 방법에 있어서 의식의 영역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 에드바르 뭉크: 노르웨이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인 뭉크는 사랑, 고통, 죽음, 불안 등을 주제로 내면 세계를 시각화하였으며, 자신의 내면에서 겪는 갈등을 작품으로 이야기한다. 그의 <여자 마스크 밑의 자화상>은 개성적인 독특한 방식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표출했는데, 왜곡된 표현의 자화상이 중심이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다양한 조형언어와 자의식을 작품 속에 표현하면서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이전의 화가들에게 느낄 수 없었던 자신들만의 개성적이고 주관적인 정신세계를 독자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특히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불우한 생애와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여 자화상을 많이 제작하였다. 독특한 눈썹과 오브제로 설명될 수 있는 자화상은 페미니즘사에도 많이 연구가 되고 있다. 에곤 쉴레 역시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적인 고뇌와 내재된 욕망을 연결시켰다. 

5. 사진과 자아 탐구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현대 미술의 초상화는 과거의 초상화와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추상미술의 출현과 함께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났으며, 개인의 심리와 성격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 생각에 충실한 경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소외된 인간, 분열된 자아의 모습을 단편화하거나 왜곡되게 표현한다. 현대와 들어와 화가들이 주관과 개성을 중시하고 닮음에 덜 집착하게 되자 그 빈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사진이었다. 1990년대 신디 셔먼은 옛 대가들의 초상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자신을 분장해 연출된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미국의 화가 척 클로서 역시 사진을 바탕으로 한 대형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자화상은 압도적인 크기와 집요함까지 갖춰 묘한 느낌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이처럼 자화상은 화가의 내적 고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작품 안에 감정을 전이시키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꾀한다. 자화상을 통해 그 당시 사회적 흐름이나 가치관, 인생관과 자신의 자아실현의 욕구뿐만 아니라 자기애를 다양한 자신만의 언어로 표출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6. 한국의 자화상

한국 미술사에서 회화가 가장 발전하였던 조선시대는 유교를 바탕으로 문인화가와 화원들에 의해 회화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문인사대부 화가들의 자화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였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사상의 대두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연구 대상이 되었고,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이 학문은 조선 후기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영·정조 시대에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고 회화적 특징이 강한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다.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실제 인물의 모습과 흡사할 정도로 머리카락, 눈썹, 수염, 얼굴의 기미나 반점 하나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다. 대상 인물과 동일하게 재현하려는 세밀한 노력과 뛰어난 표현력 또한 특징이다.

이 시기 부수적인 성향과 새로운 화풍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때 활동했던 선비 화가로 공재 윤두서를 들 수 있다. 그는 인물화에 특출했고, 국보 제 240호로 지정된 그의 <자화상>은 조선 시대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으로 정확한 묘사를 통해 내면의 자아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윤두서, <자화상>, 1710

 

이 작품은 정확하고 섬세한 필치로 몸을 완전히 생략하고 얼굴에만 역점을 둔 극사실적인 표현과 명암법, 독특한 화면 구성을 통해 외적인 표현에 치우치기보다 그의 미묘한 정신세계를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얼굴을 화면 위쪽으로 올려 배치하고, 정기 어린 눈과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 수염을 세세하게 표현했으며, 귀와 의복을 그리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화면 중앙 위쪽에 배치한 것은 중량감을 통해 중후한 용모를 드러낸다. 공재는 자신의 내면적인 절제에 따른 극기적 긴장의 경지를 자화상에 표현했다.

표암 강세황 역시 조선 후기 대표 문인화가로 몇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의 자화상은 문인사대부로서 그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데, 음영에 의한 입체감을 표현함으로써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관모와 야복이라는 다른 요소를 한 화면에 함께 배치하고, 여기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점도 그의 자화상이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유화 자화상이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던 1910년대이다. 1920년대는 나혜석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내면에 대한 관심과 개성적인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 미술 전람회 출품작과 함께 그녀의 작품은 1930년대 자화상 발전에 토대가 되었으며, 1930년대 화가들의 내면 탐구가 심화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자화상이 우리 미술계에도 정착되기 시작한다. 

 

예술은 작가의 경험과 상상을 반영한다. 결국 자기 표현이란 자신만의 특성을 나타내며 개성과 창의적인 태도의 기본이 된다. 자화상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 능력과 자아에 대한 성찰, 나아가 정서적 안정까지 얻을 수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이해와 자기애를 바탕으로 긍정적 자기 성장 및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왜 예술가들이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자화상에 관심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화상은 예술가의 작품이면서 그들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