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가 경기도에서 처음 만들어지고, 많은 교육적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혁신학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은 혁신학교의 성공이라 평가받습니다. 혹자는 이 정책이 우리 교육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교육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라 요약하지만, 그 실상은 저마다 다르게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학교의 요체는 교육개혁을 말하되 학교를 단위로 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또한 위로부터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교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학교교육의 새로운 상을 제시한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의 결정체라는 이념이었습니다.
1. 혁신학교의 발단과 전개
'혁신학교'는 2009년 9월 경기도교육청이 최초 정책으로 도입한 이후 6개 시·도교육청(경기, 서울, 강원, 광주, 전북, 전남)의 핵심 정책으로 채택하며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해서, 그다음에는 14개 시·도교육청이 이 정책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1) 혁신학교의 법적 근거
혁신학교는 자율학교 설치에 관한 '초중등교육법 제61조 및 동법 시행령 제105조'와 훈령, '교육과학기술부 훈령 제185호'에 근거합니다. 동 훈령에 따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과별 수업 시수를 일정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군) 및 교과영역의 필수 이수 단위를 준수해야 함과 동시에 교장 공모 및 단위 학교당 일정 비율의 교사를 초빙할 수 있도록 한 데 있습니다. 여러 시·도교육청에서 혁신학교를 설치 운영하고 있지만, 명칭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서울은 서울형혁신학교, 경기는 혁신학교, 세종은 세종혁신학교, 충남은 행복 나눔 학교, 강원은 행복 더하기 학교 등입니다. 조례를 제정한 지역도 있는데, 조례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학생과 교육 주체 간의 민주적 소통 및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 공교육 내실화, 미래지향적 창의 인재 육성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2) 교육청 정책으로서 혁신학교
경기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혁신학교 철학은 공공성, 창의성, 민주성, 역동성, 국제성의 5개 축을 중심으로 하여 4개의 영역, 즉 창의지성 교육과정 운영, 전문적 학습공동체 형성, 민주적 자치공동체 형성, 자율 경영 체제 구축이라는 영역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처음 행복의 추구, 책임과 공공성, 자율과 창의, 자발과 참여, 소통과 협력이라는 5개 항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참여와 협력의 교육문화공동체'라는 철학을 중심축으로 하고 여기에 6개 영역을 제시했습니다.
- 교육과정 혁신: 온전한 성장을 꿈꾸는 학교 ☞ 교육과정의 특성화, 다양화, 문예체 교육의 부흥
- 수업혁신: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신나는 학교 ☞ 참여와 소통을 통한 협력 수업
- 학생 평가 방법 혁신: 성장과 발달의 과정을 평가하는 학교 ☞ 민주적, 협력적 학교 문화 구축
- 생활지도 혁신: 인권이 존중되는 평화로운 학교 ☞ 인권 존중, 체벌 금지, 비폭력 평화교육
- 교육복지 혁신: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돌봄과 배려의 학교 ☞ 빈곤, 위기 학생 안전망 강화
혁신학교와 관련해 중요한 것이 2011년 10월 5일 이후 여러 교육청에서 이어졌던 '학교인권조례 제정'에 관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규범과 통제가 아니라 인권 존중, 체벌 금지, 비폭력 평화교육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울시 인권조례의 철학과 정신은 이 맥락에서 뜻을 갖습니다. 이는 혁신학교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이와 관련한 문제도 팬데믹을 겪고 학교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모습이었습니다.
2. 혁신학교의 전개과정과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한 논의
1) 혁신학교의 전개과정
-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남한산초등학교는 2000년에 폐교될 운명에 처한 학교였습니다. 이 작은 학교를 살리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학부모, 교사들 간의 연대가 이루어졌고, 이는 최초의 학교 지키기 단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학교 만들기 운동'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슷한 사례들은 종래의 교육개혁운동이 거대 담론, 즉 정책이나 이념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에 비해, 학교와 교실이라는 일상적, 구체적 현장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 있는 성과를 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후 이같은 학교들이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게 되면서 '작은 학교교육연대'라는 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가치는 '참삶을 가꾸는 교육', '행복한 학교', '공동체 교육'으로 요약됩니다.
- 대안교육운동: 대안교육운동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볼 수 있었던 경쟁 교육과 사교육 등 심각한 병리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어린이 삶의 정당한 촉진, 교육의 사회공동체적 기능 수행, 바른 공부법, 삶을 위한 교육을 가능케 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더불어 교육에 대한 또 다른 시선으로 기존의 공교육적 학교 틀을 넘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방과후학교나 주말학교, 계절학교, 자유학교 및 홈스쿨링 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대안학교의 지향점은 학교가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발견하기, 학교와 학교 간의 대화와 교류, 협력을 촉진하기, 교사 하나하나의 철학과 삶을 닦아 나가기, 우리 문화와 학교 현장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론과 방법론을 발전시키기, 이론과 실천 사이의 생생한 교류 및 협동을 촉진하기, 타자의 관점과 입장의 차이를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기, 작은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등입니다.
2) 혁신학교의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한 논의
혁신학교의 의미 있는 성장을 위해 고려할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쟁 교육 vs. 협력적 인간교육: 인간적 삶과 가치,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을 추구하는 교육
- 교육의 사사화 vs. 교육의 공적 가치 추구: 사회공동체적 가치 실현과 복지교육
- 전통적 관료제 학교 vs. 민주적, 참여적 자치공동체 학교: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학교
- 획일적 교육과정 vs. 자율성, 독창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 유연한 교육과정
- 주입식, 강의식 수업 vs. 자기 생산적, 협력적, 창의적 학습: 가르침과 배움, 경쟁과 협력, 모방과 창조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점 모색
- 객관적 지식교육 vs. 개성적, 인격적 지식교육: 개성의 발현과 성숙
- 주요 교과목 교육 vs. 문화, 예술, 체육을 포괄하는 전인교육: 통섭과 융합에 의한 상호 연계적 전일성
특히 현시점에서 인간교육이라는 주제는 생태학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자신과의 관계: 타자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교류에 중점을 두며, 따라서 인간됨, 인간 형성 문제를 공부의 근간으로 삼습니다.
- 타자와의 관계: 공동체를 경쟁 위에 놓는 사회생태학적 시각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평준화 정책이 지향하는 이상은 포기할 수 없는 정당성을 갖습니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 사립고의 출현은 유삼스럽게도 이 구조를 무력화시켰는데, 이로써 일반계 고교는 전반적으로 점차 황폐화되는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쟁을 통해서 학교 역량을 제고하자는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 고시제는 현장에서 많은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수학습 차원에서 학습자는 자발적, 협력적으로 공부해야 하며, 평가 역시 서열화 방식보다는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또한 공동체가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 국제적 관계: 오늘날 한 나라의 교육은 경제 세계화에 따른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법칙에 따라 재편된 세계 질서에 부득이 편입되었습니다. 혁신학교는 상호 존중과 상생이 가능한 세계 질서를 교육의 목적과 목표로 설정합니다. 그런 뜻에서 의미 있는 세계 윤리를 터득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 자연환경과의 관계: 경제 세계화, 자본주의와 기술문명의 구가라는 판에서 전 지구적 자연환경의 파괴라는 참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공교육체제가 그 철저한 변혁을 위해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혁신학교는 그런 점에서 생태적 학교이고, 이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기도 합니다.
혁신학교 패러다임의 핵심은 인간다운 교육, 행복한 아이들, 자유와 자발성, 협력과 공생, 민주시민, 생태적 위기에 봉착한 인류사회의 미래를 제대로 담보해 낼 수 있는 학교 등에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학교 및 교육 관련 문제를 풀어내는 학교 안의 소통적 협의구조일 것입니다. 적지 않은 현장 사례에서 그렇지 못한 현상들이 보고되고 있어 개선이 요구됩니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이론적 공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