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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의 세 가지 충동과 온전한 인간에게 필요한 놀이

by 문화과학자 2024. 2. 22.

실러에 의하면 충동은 내면에 있는 필연성을 현실화하고, 외부에 있는 현실적인 것을 필연성의 법칙에 종속시키기 위해 작용하는 상반된 힘들입니다. 충동(Trieb)은 세 가지가 있는데, 감각충동(der sinnliche Trieb), 형식충동(Formtribe), 놀이충동(Spieltrieb)입니다.  

1. 감각충동과 형식충동

1) 감각충동

감각충동은 인간의 물리적 현존 또는 감각적 본성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을 시간의 한계 안으로 이끌어 물질로 만드는 것입니다. 개성은 자유로운 활동에 속하는데, 개성만이 물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불변하는 존재인 자기 자신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물질이란 시간을 가득 채우는 변화 또는 현실을 뜻합니다. 이 충동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시간이 내용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이런 상태를 감각(Empfindung)이라고 하는데, 물리적 현존은 감각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릴 수 있습니다. 어떤 악기로 하나의 음을 내게 되면 그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음 가운데에서 오직 이 하나의 음만 실현되는 것처럼, 시간 속에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밖의 다른 것을 모두 배제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현재를 느낌으로써 무한히 가능한 그의 규정들이 오직 현재의 특정한 양상으로만 한정됩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인 한에서 이 감각충동이 지배합니다. 이 충동은 파괴할 수 없는 쇠사슬을 동원해 더 높이 날아오르려는 정신을 감각세계에 붙들어 매고, 아주 홀가분하게 무한성 속으로 들어가려는 추상을 현재의 한계 안으로 다시 불러들입니다. 

2) 형식충동

형식충동은 인간의 절대적 현존 또는 이성적 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자유로 이끌고, 삶의 다양한 양상에 조화를 도입하고, 상태의 온갖 변화 속에서도 그의 개성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절대적 통일체인 개성은 자기 자신과 결코 모순될 리 없기에, 개성의 유지를 추구하는 이 충동은 자신이 항구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만을 언제나 요구합니다. 이 충동은 지금 결정한 그대로 언제나 그렇게 결정하고, 항구적으로 명령할 것만을 현재에도 명령하며 시간의 전체 흐름을 포괄합니다. 즉 이것은 시간을 없애고 변화를 없애면서, 현실적인 것이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이 되기를 바라며, 진리와 올바름을 향합니다. 감각충동이 여러 경우를 만들어낸다면 형식충동은 법칙들을 제시합니다. 지식의 문제에서는 판단을 위한 법칙들을, 행위의 문제에서는 의지를 위한 법칙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형식충동이 지배하며 우리 내면에서 순수한 객관이 행동하는 경우에는 존재가 최고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한은 사라지고, 인간은 보잘것없는 부피 단위에서 현상계 전체를 포괄하는 이념 단위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2. 두 충동의 작용

감각충동과 형식충동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일한 대상에서 대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각충동은 변화를 요구하지만, 개성과 그 영역에까지 변화를 확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형식충동은 통일과 지속성을 지향하지만, 상태가 개성처럼 고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성상 두 충동이 부딪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충동을 감시하고 그 각자에게 한계를 확보해주는 것이 문화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문화(교육)의 작업은 이중적입니다. 그것은 자유의 침입에 맞서 감각성을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감각성의 힘에 맞서 개성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첫째, 수용하는 능력은 감수 능력, 감수성으로 세계와 매우 다양한 접촉을 하게 해주고, 감정의 영역에서 수동성을 최고로 끌어올립니다. 둘째, 규정하는 능력인 사고력은 수용하는 능력에서부터의 독립성을 최대한 확보해 주고, 이성의 영역에서 능동성을 최고도로 끌어올립니다.

 

세계는 시간 안에 펼쳐진 것, 변화이기 때문에 인간을 세계와 결합시키는 능력의 완전성은 최고의 변화 가능성과 최고의 확장 가능성(외연)을 유지하려는 노력입니다. 한편 개성은 변화 속에서 지속인만큼 변화에 맞서는 이 능력의 완전성은 최고의 독자성과 최고의 집중(내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성이 힘과 깊이를 얻고 이성이 자유를 많이 가질수록 인간은 세계를 더욱 많이 파악하고 더 많은 형식을 자기 밖에 창조합니다. 더불어 감수성이 다양하게 발전할수록 그리고 현상에 더 많은 표면성을 제공할수록 인간은 세계를 더욱더 많이 장악하고 더욱 많은 소질을 자기 안에서 발전시키게 됩니다. 이 두 특성이 결합된 인간은 현존재라는 삶의 최고 충만함을 독자성 및 자유와 결합시키고, 세계에 부딪쳐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현상들을 지닌 세계를 자신 안에 끌어들여 자신이 가진 이성의 통일성 아래 종속시키게 됩니다. 감각(물질) 충동이 형식충동을 침범하는 경우 그러한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형식충동이 물질충동을 침범하면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이 단순히 시간의 내용이 되는 순간 이미 그는 존재하기를 멈추며, 따라서 그에게는 내용도 없어집니다. 그의 개성이 중지됨과 동시에 그의 상태도 중지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단순히 형식이 된 순간 이미 그는 형식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은 독자적인 한에서만 그의 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두 충동은 힘 빼기(Abspannung)라는 제한을 필요로 합니다. 개성이 그 도덕적인 집중을 통해 감각적인 집중을 누그러뜨리고, 인상들을 통제해 인상에서 깊이를 빼앗고 표면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형식충동의 힘 빼기 역시 감각성 스스로가 승리하는 힘으로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고, 정신이 멋대로 자신의 활동성을 동원해 감각성에게 휘두르려 하는 폭력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즉 개성은 물질충동을 본래 자신의 영역에 붙잡아두고, 감수성이나 자연은 형식충동을 본래의 자신의 영역 안에 붙잡아두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놀이충동

1) 두 충동의 상호작용 놀이충동

감각충동과 형식충동 사이의 상호관계는 순전히 이성의 과제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오직 자기 삶을 완성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과제입니다. 인간은 규정된(현실적) 존재를 통해 절대적(이성적) 존재를, 절대적 존재를 통해 규정된 존재를 추구해야 합니다. 인간이 이러한 이중의 체험을 동시에 한다면, 즉 자유를 의식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느끼고, 스스로를 물질이라 느낌과 동시에 정신으로서의 자신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면, 이 경우 인간은 자신의 인성을 완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바라봄(Anschauung, 관조)을 마련해준 대상은 인간의 실현된 규정의 상징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는 무한성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감각충동은 변화가 나타나기를, 즉 시간이 내용을 갖기를 바랍니다. 형식충동은 시간이 없어지기를, 즉 변화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 두 충동을 자신 안에 결합시키는 충동을 놀이충동(Spieltrieb)이라고 합니다.

 

놀이충동은 시간 안에서 시간을 없애기를 추구하며, 절대적 존재와 생성의 결합, 아이덴티티와 변화의 결합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충동은 규정되기를 바라며 대상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 형식충동은 자신이 만들어낸 모습 그대로를 느끼고자 하며, 감각이 받아들이기 원하는 모습 그대로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감각 및 형식충동은 마음(기질)에 강요를 행하는 것인데, 감각충동은 자연법칙을 통해, 형식충동은 이성법칙을 통해 강요합니다. 놀이충동은 모든 우연성을 없애는 것이므로 모든 강요 또한 없애며, 인간을 물리적·도덕적으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경멸받아 마땅한 사람을 열정에 사로잡혀 포옹한다면 우리는 고통스럽게 자연의 강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존경해야 할 어떤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고통스럽게 이성의 강요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우리 취향에 맞고 동시에 우리의 존경도 받는다면 감정의 강요나 이성의 강요는 사라지고, 우리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2) 놀이하는 인간

감각충동의 대상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삶(Leben)입니다. 즉 모든 물질적인 존재와 감각에 직접 나타나는 모든 것을 이르는 개념입니다. 형식충동의 대상을 일반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비유적인 의미나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형성력(Gestalt)입니다. 사물의 모든 형식적 특성과 이들 특성이 우리의 사고력에 대해 갖는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놀이충동의 대상은 일반적인 도식으로 살아 있는 형성력(lebende Gestalt)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의 모든 미적인 특성, 가장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형성력에 대해 생각만 하는 한 그것은 생명 없는 추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삶을 느끼기만 하는 한 삶은 형성력 없는 단순한 인상일 뿐입니다. 그의 형식이 우리의 감정 안에 살아 있고, 그의 삶이 우리의 이해력 안에서 스스로를 형성하는 경우에만 인간은 살아 있는 형성력이 되는데, 우리가 인간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은 두 충동의 공통 대상이며, 놀이충동의 대상입니다. 놀이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우연하지 않으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떤 강요도 받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태 가운데에서 놀이만이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어주고 그 이중의 본성을 동시에 활짝 펼쳐줍니다. 아름다운 것은 단순히 삶이기만 한 것도, 단순히 형성력인 것만도 아니며, 그것은 살아 있는 형성력, 아름다움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오직 아름다움으로만 놀이를 해야 합니다. 상반되는 두 충동의 상호작용에서 그리고 상반되는 두 원칙의 결합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이상은 현실과 형식의 가능한 한 가장 완벽한 결합과 균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