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시장 혹은 미술 시장은 예술과 시장의 결합으로 예술품이라는 시각예술의 가치가 상품 가치의 유통 구조에 따라 거래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이 상품의 수요 공급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이라면, 예술 시장은 21세기 문화예술산업의 시대에 미술품이 시장의 원리 속에서 제작, 감상, 유통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1. 일반 시장과 예술 시장
일반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형성됩니다. 먼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요구를 파악하고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공급을 함으로써 소비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시장이 형성되고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예술 시장은 예술 공급자와 수요자 간 교류의 영역으로 특성상 예술작품이 중심이 됩니다. 상업적 가치와 상품으로써 미술품이 공개되고 미술품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교류를 통해 매개적 의미의 시장이 형성됩니다. 즉 예술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전제하고 소비자를 찾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로 공급과 소비가 발생하고 예술 시장이 형성되고 운영되는 것입니다.
2. 예술 시장의 형성
1)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 후원
절대적 신 중심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인본주의는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이 시기 종교적 세계관과 봉건적 지배 계급을 통해 형성된 부유하고 교육을 받은 지배 계층은 예술가를 후원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메디치가가 재정적으로 당대 예술가들을 후원한 대표적 가문이고,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은 왕실 및 부유한 권력층과 귀족들의 주문에 따라 예술품을 생산했습니다. 당시 활동하며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들은 보티첼리,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등이 있습니다.
2) 바로크 시대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바로크 시대는 절대군주들이 예술 시장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절대군주들은 국가 전체의 자원을 독점한 후 권력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고용해 많은 양의 예술작품을 생산하게 합니다. 이 시기 국가단위의 예술조직인 아카데미가 등장하게 되는데, 아카데미는 미술, 무용, 음악 분야에서 강력한 왕권의 대변으로 절대군주와 신하들은 예술작품의 주요 수요자가 됩니다. 그들은 단순 후원을 넘어서 작품의 주제 및 등장인물, 포즈 취하기 등 자기 취향을 바탕으로 작품 제작에 관여합니다.
3) 근대사회 미술과 자본의 만남
근대 합리성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의 제도들이 바뀌던 시대에 예술가들의 주체적 역할이 강조되며 현대적 의미의 예술시장이 형성되게 됩니다. 예술가들은 점차 교회, 왕, 귀족 등 특정 권력 및 부에 예속된 창작 활동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창작 주체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고용된 신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근대학문, 사회적 영역이 발전되면서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이 생기고, 공연예술에 있어서도 본격적으로 관객과 무대가 마주 보는 공연장이 생기게 됩니다.
4) 예술 시장
예술가들의 작품활동 기반은 이제 후원에서 시장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근대 예술가들은 작품을 주문 제작 형태로 제작해 따로 작품 판매의 구조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부유한 상인이나 시민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계층이 생기면서, 불특정 수요자들에게 판매되는 방식이 도입되게 됩니다. 왕실이나 귀족이 아닌 신흥 부자들, 새로운 수요자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대 미술시장 형성 배경에는 중간 시민계급이 크게 성장했던 네덜란드가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근대 예술 시장 체제를 형성했는데, 당시 상공업이 발달하고 식민지를 건설해 전 세계적인 해외무역과 상공업이 발전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신흥부유층 시민이 생기고, 그들에 의해 종교와 사상의 자유, 사회 평등과 함께 현대적 자본주의 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수요층은 새로운 미술 장르를 탄생시킵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그림이 등장하는데, 자화상, 시민들의 삶을 주제로 한 풍속화, 초상화, 풍경화 등이 등장합니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왕실, 귀족, 성서가 아닌 일상생활, 개인을 주제로 다양한 장르의 그림들을 선보입니다. 예술 시장에서 불특정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자율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시대를 반영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평범한 가정의 부엌에서 우유를 따르는 일상적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더불어 빛의 화가로 유명한 램브란트는 네덜란드 시민들의 모습과 자신의 자화상, 초상화 등을 그립니다.
3. 예술 시장의 특징
- 일반기업은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지만 예술 시장은 예술작품을 전제로 소비자를 발견합니다. 따라서 수요보다 공급이 중심이며, 예술 작품이 주도하는 시장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 그 자체입니다.
- 예술 시장은 수요 공급의 양보다 질적인 가치가 강조됩니다. 예술작품의 예술성이 우선시 되는 제품 주도형 시장이기 때문에, 작품성이 중시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예술가가 창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 산업화란 생산성의 증대, 분업화, 시장의 발달을 바탕으로 하는데, 문화예술 산업화의 시장 형성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대중적 호응에 따른 시장의 변화라는 속성입니다. 예술 시장은 상품, 서비스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교환합니다.
- 미술 시장의 핵심 주체는 창작자인 예술가와 화랑, 경매, 아트페어 등 중개 의미의 매개자, 관객이나 컬렉터 등의 수요자입니다.
- 예술 시장에서도 공연 시장과 미술 시장은 조금 성격이 다른데, 공연 시장은 예술가의 창작물을 관객이 공연장에서 관람하며, 공연과 관람이 공연장 안에서 형성됩니다. 미술시장의 경우 예술가의 창작품이 감상뿐 아니라 매매를 통해 관객이나 컬렉터에게 교환되는 방식입니다.
4. 상품으로써 예술작품
미술품은 예술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창작물로 미적체험을 제공하고, 미적효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경제적 소비재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상품으로써 예술작품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 예술작품은 그림처럼 유형의 제품도 있지만 주로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술작품의 무형적 특성은 실체가 불확실합니다. 자동차와 같은 제품은 시승이 가능하고, 음료 상품은 시음이 가능하지만, 예술작품은 구입 전 사전에 살펴보기 힘들고, 자신의 취향이나 수준에 맞는지도 미리 알아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이러한 무형성은 무한한 파생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지니고 있습니다.
- 예술작품은 이질성을 지니고 있는데, 같은 공연이라도 제작자와 출연자에 따라 매번 다른 느낌과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같은 화가의 전시라도 기획의도에 따라 다른 성격의 작품이 될 수 있고, 지휘자에 따라서도 다른 분위기와 느낌의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감상하는 사람, 공간, 큐레이터의 기획의도에 따라 다르게 소비될 수 있는 미술품인 만큼 매 전시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재탄생하고, 공연예술의 경우에는 이런 의미에서 모든 공연이 저마다 다른 원작이 됩니다.
- 상품으로써 예술작품은 제작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 분리시킬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제품과 달리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공연하고 관람객이 관람하는 공연 감상 상황처럼 제작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분리불가능성을 지닙니다. 박물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시각예술작품의 감상 역시 일정한 공간적, 시간적 제약를 지니고 현장성 있는 특수한 감상이 이루어집니다.
-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 일회성의 속성을 갖는데, 이처럼 예술작품은 소멸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미술 작품은 소장이 가능하기도 하나 전시 관람의 경우 이후에는 저장, 보관이 불가능합니다.
5. 한국 미술 시장
한국미술사에서 미술품 유통 개념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집니다. 조선시대 미술품은 크게 문인화와 화원화가, 생활필수 공예품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미술품은 원하는 작품을 주문 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 조선시대 미술품
- 감상을 위한 미술품: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품격과 학문의 세계, 풍류를 표현한 미술품은 문인화로, 이 서화는 취미적인 단계의 품격 도야를 위한 유희 수단이었습니다. 매매를 위한 상품적 가치보다는 인품의 도야를 위한 결과물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 내용은 자신의 이상향이나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사고의 깊이와 결과를 투영해 나타냅니다. 유교적인 사상에 근거한 관습으로 조형적 차원으로서 미를 추구하는 창작 행위만이 아니라 인격수양의 중요한 도구로써, 이것은 중국, 일본 등 동북아문화권에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 화원화가: 조선 시대 가장 중요한 미술품 유통 방식은 주문생산입니다. 이것은 일차적 작품의 유통으로 화원화가는 직업화가로서 급료에 의해 생계를 유지했고, 상류층의 취미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작품을 유통하거나 판매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주문에 의해 장인들의 공예품이 생산되었고, 주문자가 직접 접근하여 개인적으로 주문받은 작품을 완성하여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 공예품: 공예품은 벽사나 길흉화복을 주제로 생활필수품이나 장식품이 생산되었습니다. 조선후기 서민이나 무명작가들에 의한 민화는 장식용으로, 민요에서 생산되는 도자류는 그릇이나 생활용기로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2) 조선 시대 미술품 유통
조선 시대 상업적 목적으로 매매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제한된 의미의 유통이었습니다. 사대부와 귀족들의 문인화 제작은 인격수양의 과정인 경우가 많았고, 직업화원의 경우 주문생산으로 특별한 요청이 있을 경우 후원자의 집에 머무르며 제작하거나 특정 작가의 작품을 원할 경우 직접 접촉하거나 거간꾼이 작품을 구하여 제공하는 형태였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비로소 익명의 작가, 서민, 장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 조선 후기 시대적 상황: 조선 후기는 18-19세기 사회개혁으로 새로운 신분질서가 구축됩니다. 근대적 변화를 초래하는 움직임으로 미술에 있어서 새로운 소비자 등장은 수용계층의 변화를 이끕니다. 이들은 중소상인이나 소규모 수공업자, 광공업자 등의 중간 지배계급층으로 이들의 탄생에 의해 자본이 이동하고 계급이 분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 직업예술가 등장: 유랑화공은 그림을 그려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떠돌이화가를 이르는 말입니다. 국가 기관에 여러 장인들이 소속되어 있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유랑화공, 사사장인이 등장합니다. 사사장인은 지주, 자본가, 중소상인 등 새로운 계층을 비롯 영세소농과 임노동자들의 주문에 응하는 장인으로 실경산수, 풍속화를 제작 및 판매했습니다.
- 실학과 본격적 미술 시장: 19세기 서민들 대상의 미술 시장이 형성됩니다. 무명화가들이 등장하고, 서민들을 대상으로 소박한 미의식과 실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이 등장합니다. 실학 사상의 영향으로 새로운 계급질서의 변화와 더불어 미술품을 소유하려는 애호가들이 증가합니다. 미술품의 수요와 공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19세기말부터 미술가의 독자적인 전시회가 개최됩니다. 작가, 수요자, 매개자의 3 요소가 형성되고, 전문화상과 화랑이 탄생하며 본격적 미술 시장이 등장합니다.
한국 미술품은 작품의 주문생산이나 호의에 의한 선물, 상찬, 교환 등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만의 교유한 미술품 유통형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세기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직업예술가가 미술분야에 등장했고, 19세기에는 무명화가들과 더불어 조선 후기 급격한 신분제의 변화 속에서 미술품을 소유하려는 새로운 애호가들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미술 시장이 형성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