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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사고의 표상 '통찰'

by 문화과학자 202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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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이라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을 생각하는가 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요리 분야에서 대가가 되려면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수련해야 한다. 정신적 요리도 마찬가지이다. 창조적인 상상의 부엌에서도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대단한 아이디어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솟아오르고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과 섞이기도 한다. 

 

1. 유레카, 직관

문제를 풀다가 답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면,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 속에서 해답을 구한 경우이다. 정답에 대한 확신은 절대적이지만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처럼 직감은 무엇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지의 실체에 대한 직관적 파악은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은 그게 무엇인지 해독할 수 없다. 때때로 안다는 것은 이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실제 탁월한 사색가, 창작가, 발명가들의 경험에는 전논리적 사고의 형태가 포함되어 있다. "언어라는 것, 글로 된 것이건 말로 된 것이건 간에 언어는 나의 사고과정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과정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심리적인 실체들은 일종의 증후들이거나 분명한 이미지들로서, 자발적으로 재생산되고 결합되는 것들이다." 아인슈타인도 이와 같이 말했다.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심상이 먼저 나타나서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말이나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 역시 "수학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지 이해의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학문분야에서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2. 통찰로 이어지는 직관

말은 느낌을 나타내는 기호일 뿐 그 느낌의 본질은 아니다. 쓴다는 것 역시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내적인 느낌을 심상으로 만들어 이를 체험해야 한다. 이미지의 논리, 심상의 체험, 상상하는 삶이 요구하는 인내와 관찰, 이런 말들은 일종의 초논리로, 이것들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발생시킬 뿐, 그것들의 타당성이나 유용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우리가 뭔가를 증명할 때는 논리를 가지고 한다. 그러나 뭔가를 발견할 때는 직관을 가지고 한다. 논리학이라는 스승은 우리에게 장애물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애초에 원했던 목표 지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지점을 보는 것이 필요한데, 이 목표지점을 보라고 가르치는 스승은 논리학이 아니고 바로 직관이기 때문이다.
-앙리 푸앵카레-



초논리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 직관이다.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자와 예술가의 통찰은 모두 느낌과 직관의 영역에서 발생하여 동일한 창조적 경로를 거쳐 의식 속에 출현한다. 상상을 동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정서적 느낌, 시각적 이미지, 몸의 감각, 재현 가능한 패턴, 유추 등의 생각도구를 가지고 얻어낸 주관적인 통찰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식적인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을 배운다. 

 

3.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의 넓히는 것

뾰족한 맛은 어떤 맛일까. 어떤 사람은 맛을 색으로 느끼고, 어떤 사람은 보는 것마다 각기 다른 냄새를 맡는다. 이 모든 다양하고도 특이한 감각융합현상들은 공감각의 형태를 띤다. 공감각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 어근을 두고 있는데 융합, 결합, 다 같이를 뜻하는 'syn'과 감각을 뜻하는 'aisthesis'가 합쳐진 말로 감각의 융합을 뜻한다. 감각의 융합과 그것의 강도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예컨대 차에 적신 마들렌느 과자를 한 입 베어 문 것에 관한 돌연하고도 강렬한 기억을 묘사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타난 묘사는 연상적 공감각의 원형이다. 주인공에게 차에 적신 과자의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과 경험의 모든 부분에 연결된 생생한 감각적 세부들을 일깨워준다. 특정한 소리, 냄새, 맛 또는 행동은 특별히 유쾌하거나 불쾌한 공감각적 기억을 환기시킨다. 생각하기가 본질적으로 공감각적이라면, 연습을 통해 연상적인 공감각능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비서구권 철학자들 중 일부는 일본의 문화에 주목하는데,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화가와 철학자들이 공감각을 가장 고급한 형태의 미적 체험으로 여겨왔으며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배양해 왔다. 다도 같은 전통 의식은 음식과 도자기예술, 실내장식, 조경, 동작법이 결합되어 있다. 조경은 단순히 자연을 축소한 것이 아니고 추상화한 것인데, 이는 명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차를 따를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주전자 바닥에 작은 쇳조각들을 가지런히 깔아놓았기 때문에 찻주전자에서 나는 소리는 노래처럼 들린다. 이같이 의식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미각, 촉각, 후각, 시각, 청각, 고유수용감각을 고양시키고 있다. 즉 감각들의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색, 소리, 맛, 향, 감촉, 온도감각 등 다양한 감각들이 섞이면서 느낌의 연속체로 융합된다. 감각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실제 많은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다양한 표현형식들을 결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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